[주간동아]전원주택에 대한 새로운 건축적 솔루션_용인 수지의 복합공간 위브릭버드 (2020.02.19)
남북축에서 바라본 위브릭버드. [김재윤 작가]
‘
저 푸른 초원 위에 / 그림 같은 집을 짓고 / 사랑하는 우리 님과 / 한 백년 살고 싶어.’
남진의 히트곡 ‘님과 함께’(1972) 서두를 여는 이 가사에는 한국 실버세대의 원초적 꿈이 담겼다. ‘아파트공화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다수의 아랫세대와 달리 그들은 대부분 전원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러니 은퇴하면 고향마을로 낙향하거나 하다못해 교외주택에서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며 살기를 꿈꾼다. 여우도 죽기 전 제 살던 곳을 그리워한다는 고사성어에 기초한 수구초심(首丘初心)과 일맥상통한 꿈이다.
1990년대 이후 서울 인근 농가주택과 전원주택이 인기를 끈 이유도 거기 있다. 하지만 실제로 교외주택에 살아본 사람의 상당수는 예상치 못한 불편에 직면했다. 여름이면 쑥쑥 자라는 것이 눈에 띈다는 잔디 관리의 어려움, 텃밭에 심은 농작물을 가꾸다 하루해가 저물어버리더라는 노동의 피로, 몸이 아프면 찾아갈 병원의 부재,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의 부재, 퇴직금과 연금 외엔 돈벌이가 힘들다는 점 등등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내듯 단박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러나 도전이 있으면 응전도 있는 법. 고급주택가가 형성된 경기 용인시 수지구 고기동의 ‘위브릭버드’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한 복합적 솔루션이 담겼다. 2세대의 독립된 생활공간을 제공하는 전원주택뿐 아니라, 문화공간인 갤러리와 임대 수입을 보장하는 카페 또는 레스토랑이 함께 둥지를 튼 복합공간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고기동 예술의전당
동서축 방향에서 바라본 위브릭버드 동쪽 파사드(왼쪽). 지하1층서 지상1층 정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김재윤 작가]
서울에서 용인서울고속도로를 타고 30분가량 내려가다 보면 오른편에 낙생저수지가 나타난다. 이 저수지에서 광교산자락을 따라 전원주택 30여 채가 옹기종기 들어선 ‘해뜰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위브릭버드는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언덕배기에 있다. 집 앞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좀 더 고도가 높은 집터가 있지만, 위브릭버드는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는 지점에 자리했기 때문에 웅장한 성채 같은 느낌을 준다. 얼핏 서울 예술의전당 미니어처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하지만 전체 부지는 828㎡(약 251평)밖에 안 된다. 주택부지로만 보면 넓지만 갤러리와 카페까지 들어서기엔 좁다. 해법은 시루떡처럼 공간을 쌓아올리는 것이었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 절반은 갤러리공간, 정원과 연결되는 지상 1층의 절반은 카페공간, 2층은 신혼부부의 공간, 3층은 50대 부부(건축주)의 공간, 그리고 패러핏(옥상난간)을 높이 둘러쳐 다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옥상공간으로 구성됐다.
연면적(건축동 바닥 면적의 합)이 892㎡(약 270평)나 되다 보니 공간 구성이 빽빽하게 보일 수 있다. 전망이 확 트인 동쪽 면에 정원을 배치하고 등고선이 급경사를 이루는 서쪽 면에 건축동을 올린 것이 이런 느낌을 중화해준다. 이는 교외 건축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해결해준다. ‘신의 한 수’는 2층에서 옥상에 이르는 건축동을 검은색 전벽돌로 감싸 묵직한 무게감을 부여한 동시에, 그 형태를 새나 나비의 날갯짓을 연상케 수 있도록 형상화했다는 점이다. 위브릭버드라는 이름의 ‘위’는 서울 청담동에 본점을 둔 ‘갤러리위’에서 따온 것이고, ‘브릭버드’는 ‘검은색 전벽돌로 빚은 새’를 뜻한다.
지형에 조응한 동서축, 시선을 붙잡는 남북축
갤러리 전시공간(왼쪽). 1층 필로티 기둥 아래 카페공간. [포스트픽, 김재윤 작가]
지상 2층 신혼부부 주거공간(왼쪽). 지상3층-50대 부부 주거공간. [김재윤 작가]
그렇게 건축의 동서축은 서고동저의 주변 지형과 풍광에 조응한다. 실제 주거공간의 동쪽으로 길게 난 창으로 광교산의 숲과 낙생저수지의 물이 하나로 어우러진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반면 절개지를 면한 서쪽으로는 거의 창이 없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맞는 것은 북쪽 파사드다. 언덕길 도로를 따라 올라오면서 마주하는 면이다. 이쪽 파사드에서 브릭버드의 날개가 꺾이기에 입체적인 느낌이 강한 데다 갤러리가 있는 지하 1층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직적 상승감도 강렬하다. 옥상공간까지 치면 5층 높이의 건축을 마주한 기분이다.
그런 수직적 압도감을 느끼며 안으로 들어서면 신성함까지 느낄 수 있다. 정면으로는 온통 새하얀 갤러리공간을 마주하고 왼편으로는 햇빛이 부서지는 기다란 석조계단을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갤러리공간에선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관통하는 전시용 수직 벽이 외부에서 느꼈던 수직적 상승감을 내부에도 부여한다. 또 빛이 쏟아지는 계단을 올라 사방이 야트막한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으로 올라서면 하늘빛이 고스란히 쏟아지는 높은 성루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을 안겨준다. 동시에 바깥세상으로부터 보호받는 안온함도 부여하는데, 그런 느낌이 가장 강하게 드는 가장 깊숙한 곳에 카페공간이 위치한다.
서로 다른 건축 리듬의 퓨전
동남쪽에서 바라본 위브릭버드(왼쪽). 서쪽사면에서 바라본 위브릭버드. 저 멀리 낙생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김재윤 작가]
패러핏으로 둘러싼 옥상. [김재윤 작가]
정원에 서서 건축동의 동쪽 파사드를 바라보노라면 군함 갑판에 서서 함교를 우러러보는 느낌을 준다. 이때 횡축으로 3면을 둘러싼 유리창이 빛을 붙잡는 그물이라면 종축을 받치는 필로티 기둥은 바람을 풀어놓는 통로다. 그리고 콘크리트벽 박스로 이뤄진 함교 맨 위 공간(옥상)은 사시사철 변화무쌍한 하늘빛을 가둬놓는 우리다.
이렇게 위브릭버드는 전원이라는 공간의 특성을 최대한 만끽할 수 있는 건축적 장치를 곳곳에 배치하면서도 서로 다른 건축적 리듬을 하나로 묶어내는 퓨전 연주를 들려준다. 예술공간, 상업공간, 주거공간의 리듬은 저마다 다르다. 예술공간으로서 갤러리에 필요한 여백의 미, 상업공간으로서 카페에 필요한 개방성과 사교성, 거주공간으로서의 내밀성과 효율성 같은 것이다.
이런 리듬 변화는 위브릭버드를 직사각형 형태로 감싸고 있는 외벽의 라인에서도 감지된다. 갤러리공간은 벽면 뒤에 감춰져 있다. 카페공간이 위치한 북쪽 면에선 그 외곽 라인이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하지만 주거공간과 이웃한 주택이 마주 보는 그 맞은편 서쪽 면에선 그 경사각이 급경사를 이룬다. 생활공간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 위해서다. 건축가인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쳐랩 소장은 “과거 전원주택이 주거공간에 머물렀다면 요즘은 삶터와 일터의 기능을 함께 요구한다”며 “서로 다른 건축리듬을 하나로 집약하는 멀티유스(mutiuse)의 공간을 창출하면서 그 불연속적 건축 리듬을 하나로 매끄럽게 연결하는 작업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위브릭버드에 자리 잡은 ‘갤러리위 수지’는 3월 9일 정식 개관한다. 이용덕, 전광영, 최정윤, 하태임, 황선태, 허명욱, 로메로 브리토의 작품을 소개하는 개관 전시는 4월 29일까지 이어진다.
주간동아 1227호 (p34~37)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https://weekly.donga.com/3/all/11/19832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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