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BLIC ART] 키네틱 건축: 건축과 기술이 만들어낸 움직이는 도시풍광
Kinetic, Interactive Architecture 키네틱, 인터랙티브 건축
PUBLIC ART 2020년 2월호
● 기획 편집부 ● 글 한은주 ㈜소프트아키텍쳐랩 대표
Mokyeonri: Kinetic Wood Museum in Incheon 2017 Softarchitecturelab Photo: Shin Kyungsub
동시대 건축과 도시
건축은 역사적으로 각 시대에 부응하는 공간을 구현하기 위해 당대의 진보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발전해왔다. 기술 개입으로 개발된 재료나 구조방식은 새로운 건축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하며, 반대로 새로운 건축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는 당대의 다양한 기술을 편집하여 건축 프로젝트에 적용하게 하는 동인이기도 했다. 기술 그 자체는 건축을 구현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지만, 시대성을 담아 진보하는 기술의 특성 때문에 때때로 건축에 영감을 주기도 한다. 이는 동시대 건축에서도 마찬가지다. 한편 세계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기술로 구현된 건축 어휘의 생경한 시각적 매력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런 대부분의 건축물은 종종 도시 마케팅을 목적으로 기획하여 실행된다. 대부분 자본주의 도시가 그러하듯이 많은 수의 사람은 활기 넘치는 도시 풍광의 중요한 요소이자 자본 유통의 필수 요건이다.
그러나, 스펙터클이 사람들의 상상력을 효과적으로 자극하기 위해서는 그 건축 프로젝트의 시작에서부터 완성되기까지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그려져 유통되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주로 건축가의 유명세, 수급하기 힘든 귀한 건축 재료, 고난의도의 재료 가공방식,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구현하기 위해 동원된 첨단 기술, 기술 개입에 의한 새로운 시공 방식 등이 이야기를 극적으로 만든다. 건축가도 자본의 욕망에 부응하듯 새로운 디자인 어휘를 구현하기 위한 혁신적 디자인 방법들을 고안해 여기에 보탠다. 건축 프로젝트에 현대판 신화가 덧입혀지는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동시대 건축에 개입된 기술을 접하게 된다.
이전에 보지 못한 건축어휘가 구현된다는 것은 기존과는 다른 건축 생산방식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의미하며, 많은 경우 기존과는 다른 기술이 개입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비정형의 건축은 이미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생산방식이 다르다. 이것이 지어질 때는 구조체나 마감재가 각기 다른 모양의 비규격품을 사용해야 한다. 각 부재가 제작될 현장에서 정확히 시공되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계산법과 사전 시뮬레이션 방법이 동원된다. 이제는 널리 퍼져 별로 생소하지도 않은 반응하는 디자인(responsive design)도 계획부터 실행까지 대부분 단계에서 알고리즘이나 전자회로 설계와 같은 디지털 기술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렇듯 예전에는 건축 도면 작성과 아카이빙 정도에 활용되어온 디지털 기술이 근래에는 다양한 시대적 요구사항과 맞물려 건축 생산방식에 개입되고 있다. 진보적인 건축 학교들은 기술 도입을 통해 건축이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동시대 건축이 지향해 나아가고 있는 주요한 흐름일까?
SHANGHAI, CHINA - JANUARY 19, 2018 : The Bund Finance Center designed by Foster Partners and Heatherwick Studio.
건축과 기술의 주객전도
기술이 뒷받침된 혁신의 신화를 덧입고 나타난 건축을 보기 위해 여행객이 몰려들고, 도시의 새로운 매력으로 회자되는 것을 보면서, 마치 현대 기술이 새로운 건축의 시대를 열어줄 것 같지만 주객의 전도가 염려된다. 따라서, 우리는 기술도입에 대한 상반되는 의견이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동시대 건축에서 보여진 기술개입이 야기할 수 있는 몇 가지 문제를 짚어보자.
첫째, 기술 언어에 대한 소외다. 건축가는 구조, 설비, 토목, 등 프로젝트 실행에 필요한 분야의 정보를 이미 교육과 경험을 통해 알고 있고, 이를 반영해 디자인한다. 새로운 기술을 디자인에 도입하려면 새로운 학습과 경험을 위한 상당한 노력이 수반된다. 물론 건축가가 스스로 컴퓨터 코드를 만들어 적용할 만큼 배울 필요는 없다. ARUP와 같은 단단한 기술 컨설팅 회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 없이 단순한 도구로써 디자인에 도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건축 기술 컨설팅 회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많은 경우의 프로젝트에서 실제로 기술 컨설팅 회사가 더 많은 실리를 챙긴다고 한다. 전통적인 관점에서의 건축가의 역할은 줄어든다. 이러한 점에서 어떤 건축가들은 기술개입이 건축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고 여겨 부정하기도 한다.
두 번째로 기술의 소비 방식이다. 현대 기술의 특징은 변화의 속도에 있다. 기술 자체의 발전 속도뿐 아니라 일상으로 스며드는 파급 속도도 대단히 빠르다. 기술은 다양한 분야의 시각문화(visual culture)에 깊게 개입하고 있다. 예술이 특정 기술의 애플리케이션처럼 만들어져 유통되고, 보다 더 신기한 이미지 만들기에 점점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변화의 주기가 큰 건축에도 적용된다. 특정 기술과 연관된 새로운 건축 어휘가 몇몇 대형프로젝트에 적용되고 나면 이후에 비슷한 기술이 적용되며 이미 만들어진 건축언어를 식상하게 만든다. 건축이 새롭게 생겨난 기술의 적용 방식을 실험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어떤 건축가들은 현대 기술이 개입된 어휘나 공간의 건축적 본질조차 의심하고 보편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건축 문법을 절대적으로 옹호한다.
마지막으로, 건축의 소비방식이다. 진보된 운송기술이 전 세계 도시 간의 거리를 좁혀 장거리 운송과 여행이 쉬워질 무렵 때마침 현대 도시 공간은 이벤트와 스펙터클로 채워지고 매력 넘치는 건축물로 이미지 마케팅을 한다. 유명 건축가가 만든 대형 건축물 방문은 중요한 여행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다. 문화라는 종교로 일상의 긴장을 씻어주는 마치 ‘성지순례’ 같은 역할을 한다. 여행객의 방문은 그들의 사진으로 남고 블로그를 통해 유통되고, 건축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진이나 동영상의 형태로 소비된다. 우리의 건축공간의 경험은 도시 마케팅 문구나 먼저 경험한 사람의 의견에 지배당하기 일쑤다. 이 과정에서 건축은 눈길을 끄는 이미지만 남으며 회자된다. 일상에 스며든 현대기술은 건축의 소비방식에까지 개입한다. 여기서 건축은 매력 넘치는 시각의 놀이터가 된다. 보편적 건축어휘 그 이상의 무언가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기술이 사람을 위한 실질적인 환경 장치로서의 건축 구현을 위해 도입되기보다 매력적인 이미지 구축을 위해 도입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소한 기술 언어로부터의 소외, 기술 발전과 건축 진화간의 속도 충돌, 이미지 위주의 건축 소비 방식은 기술 개입 방식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데 있어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이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이유로 건축에 대한 기술개입을 외면하고 부정해야 할까?
PARIS, FRANCE - SEP 10: Arab World Institute(Institut du Monde Arabe) building at night on September 10 2015 in Paris
생활 양식의 변화와 기술 개입에 대한 입장
건축가들이 진보된 기술의 개입에 대해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무작정 환영하기만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 대해 특별한 몇몇 프로젝트에만 국한되는 특수한 경우라고 치부고 외면만 할 수 없다. 우리는 널리 회자되는 건축에 도입된 기술의 적용 방식에 대해 궁금해하면서도 후속의 다른 프로젝트마다 보태지는 기술의 생경함 때문에 불편해지고 마침내는 외면하거나 부정하게 된다. 그러나 기술은 이미 우리의 평범한 일상에 매우 깊숙이 들어와 있다. 다른 많은 분야에서 지적하듯이 일상생활에 개입된 기술로 우리의 생활양식이 변하고 있다. 우리는 나날이 변모하는 동시대 생활양식을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건축의 본질은 동시대 생활양식을 담는 장치이자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앞서 건축과 기술의 관계가 전도될 수 있다고 우려한 세 가지 관점은 기술에 대한 입장과 관련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기술 언어에 대한 소외보다는 기술의 개입으로 구현된 건축의 스펙터클 이미지에 의해 소외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두 번째로 우려되는 관점인 속도의 충돌 문제는 사실 현대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종종 목격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술을 건축을 구현하는 도구로 바라본다면 기술의 발전 속도보다 인간 사회와 기술 사이의 화학 작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건축의 근본 주제인 사람을 좌표로 하는 시공간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오늘날 이미지 위주의 건축소비방식에 대해 개탄하기보다 변화된 동시대 생활양식을 반영하여 건축에 대한 공간 경험을 확장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적응하는 건축: 키네틱 건축 (Kinetic architecture)
기술 언어의 낯섦, 건축과 기술의 전개 속도 충돌과 건축 소비 방식의 문제는 대부분 시간성과 연관되어 있다. 좀더 정확히 얘기하면 변화의 주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하비의 지적대로 지금은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의 리듬이 빨라져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고 있고 이 때문에 야기되고 있는 문제다. 결국 동시대 건축은 기술개입 그 자체보다도 압축된 시공간성에 관한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술을 사용하는 움직임이 있다.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는 건축으로 압축된 시간성과 공간성을 대처하려는 한 예로 키네틱 아키텍쳐(Adaptive architecture)가 있다. 이것은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여러 조건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조, 행태, 재원들이 스스로 조정하여 바꿔나가는 것을 기반으로 한 건축을 의미한다. 시간에 따라 공간성이 변화하고 진화해 나가는 건축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 변화와 진화는 현대기술을 바탕으로 한 재료의 물성이나 정보기술, 로봇공학, 컴퓨테이션의 도입과 개입으로 달성되기도 한다. 따라서, 키네틱 아키텍쳐는 시간성에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건축의 공간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다양한 기술을 토대로 건축의 외연을 확장하고 변화하는 현대 생활을 담아나간다.
도시, 건축, 미술, 그 외연의 확장
인간의 생활방식이 바뀌고 공간을 향유하는 방식과 감성이 달라지고 있는 요즘, 공공미술이 단지 공공미술작품으로만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 생활에 본질적으로 기여하는 환경과 장치가 무엇인지를 근본적으로 짚을 때다. 도시환경과 인간의 생활장치로서의 건축의 본질적 임무에 발을 디디고 기술을 건축구현도구로 다루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하는 동시대 건축이 가져야 할 기술에 대한 입장이다. 나아가 이것은 기술개입에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라, 동시대 도시환경에서 기술과 연관된 건축과 공공미술의 스펙트럼을 인지하고 실행해 나가는데도 해당 될 것이다.
글쓴이 한은주는 공간건축에서 실무 후 영국왕립예술대학원(Royal College of Art)에서 ‘도시공간에서의 위치기반 인터렉션디자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시그래프(SIGGRAPH) 2009’에서 건축과 미디어 아트가 결합된 작품을 발표했으며, ‘2011년 광주 디자인비엔날레’ 초대작가다. 『SPACE』 편집장과 공간건축 이사를 역임했다. 최근 공공건축 최초 키네틱 건축인 목연리를 완공했으며, ‘세계건축상(World Architecture Award)’과 ‘레드닷 어워드(Red Dot Award)’를 수상했다. 현재 ㈜소프트아키텍쳐랩의 대표, 한양대 겸임교수, 『SPACE』 편집위원으로 예술작업, 글쓰기, 디자인공학 등의 작업을 통해 혁신적 도시디자인과 건축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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