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Dong-a Ilbo] 2013. 7. 3 도시리듬과 폭력적 풍경 사이에서 방황하는 타팰이여!
[한국의 현대건축] <10-끝> 고층 공동주택의 두 얼굴
《 아파트는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양식이다. 하지만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공동주택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삼우, SIA, SOM·2002년)가 최악의 건축물 9위로 ‘BEST & WORST 20’ 목록에 올랐다. “왜곡되고 폐쇄적인 주거 문화의 상징이다”(조준배 앤드건축) “그들만의 건축물로 한국 사회의 계층화를 심화하는 데 한몫했다”(이기옥 필립종합건축)는 혹평이 나왔다. 최악의 건축물로 아파트 자체를 꼽은 전문가들도 있었다. “몰개성과 미적인 조악함으로 전 국토를 망쳤다”(김범준 공간종합건축)는 것이다. 반면 재미 건축가 우규승의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1988년)는 최고의 건축물 공동 21위에 올랐다. “천편일률적인 공동주택의 환경 속에서 대안적 배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혁신적 작품”(강병국 동우건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21위에 오른 올림픽선수촌아파트. “대규모 주거단지의 질서와 단순함,
그 속의 변화감과 휴먼 스케일. 현재까지 비교 대상이 없다”는 극찬이 나왔다. 동아일보DB
우리는 건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주로 유명한 건축가나 특별한 모양의 대형 건축물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건축 담론 속에 일상을 담는 주거건축이 중심이 되는 예는 많지 않다. 그래서 올림픽선수촌아파트가 최고의 현대 건축 21위에 오른 것은 한국 공동주택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아파트는 부챗살 모양의 단지계획으로 동의 간격이 좁은 곳이 있고, 평면계획에서 복층을 도입해 동선이 길어지고 전용면적에 비해 주방이 작아 거주성 면에서는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다. 하지만 풍부한 녹지와 어우러져 도시와 자연의 축을 함께 고려한 단지계획은 도시 맥락과 소통하는 주택단지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며, 다양한 공간 구성으로 변화하는 도시 일상을 유연하게 담아내고 있다.
반면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건설된 타워팰리스는 차별화된 고급 커뮤니티를 지향했으나 도시 맥락과의 괴리를 낳아 다소 폭력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그 단지만의 차별성을 단절이나 차단으로 오독(誤讀)해 가로(街路)의 흐름에 불편한 리듬을 주고 있다.
한국 최악의 현대건축 9위를 차지한 타워팰리스. “고층형 주거시설의 기술적 가능성을 보여줬으나
주거환경에 불합리한 기능적 문제가 많아 장기적으로 지양해야 할 모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동아일보DB
공동주택은 건축뿐만 아니라 도시사회학이나 부동산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역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이는 공동주택이 건축적 미학만으로 아우를 수 없는 사회 정치 행정적 요소를 포함하며, 다양한 이익집단들 간에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이끄는 집단은 주로 상업적 성공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건축 분야에서 할 수 있는 거주성에 관한 의사결정의 범위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 까다로운 법규와 각종 심의 과정을 포함해 요구 조건은 많지만 설계비는 적은 편이다. 그동안 많은 건축가들이 공동주택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발주처 요구사항에 맞는 주거설계 기술을 보유한 일부 설계회사들이 공동주택 프로젝트에 주로 참여해 왔다. 이들은 발주처가 요구하는 분양성에 중점을 두어 설계한다. 사람들은 분양 받을지를 판단할 때 광고물이나 본보기집의 상업적 이미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선분양 후시공으로 공급되는 한국 주택시장에서 입주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건축 요소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시간적 맥락은 고려되지 않는 것이다.
요즘 대두되는 층간 소음 문제를 보자. 주로 콘크리트로 지어지는 공동주택은 한 개의 동이 일체화된 구조다. 한 가구의 생활 진동이 다른 곳으로 전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위아래층 사이에는 시공비 절감을 위해 최소 두께의 슬래브가 있을 뿐이다.
대규모 단지의 긴 담장 때문에 가까운 거리를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함도 생긴다. 도시는 다양한 기능의 세포들로 조직된 유기체와 같은데 모세혈관과 같은 골목길들이 거대세포에 의해 끊어지고 뭉개져 있는 격이다. 담장을 두른 주거단지에 사는 사람들이나 지척의 거리를 둘러 가야 하는 사람들이나 불필요한 긴장 속에 산다.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시공비를 줄이고 대규모 단지 개발로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동안 우리는 비대해진 도시세포로 균형을 잃은 환경 탓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모두 도시 일상의 크고 작은 공간적 맥락을 간과한 데서 비롯된 일들이다.
공동주택 건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나 도시맥락에 대한 해석은 시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올림픽선수촌아파트는 국가적 이벤트의 기념비적 요소와 참가 선수들의 거주성이, 타워팰리스는 고급 주거문화의 새로운 상징성과 차별성이 중요했을 것이다. 둘 다 계획 당시에는 시대를 내다본 혁신적인 주거단지를 지향했다.
두 공동주택 단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도시환경의 리듬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의지의 유무에 있다. 시대가 달라져도 공동주택의 특성상 일정한 밀도로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점은 달라질 수 없다. 사람들이 시대에 따라 다른 가치관을 가질지라도 그들의 일상은 공유된 도시맥락에서 펼쳐진다. 공동주택 건축에서 개별 단지의 거주 만족도를 넘어 도시 일상과 시공간적 맥락을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한은주 SPACE 편집장